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북한산 12성문 종주 산행 (4/5)
박홍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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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Date : 2021.05.21 |
한참을 쉰 후 백운대로 향했다. 많이 쉬었으나 조금 걸으니 허벅지에 다시 쥐가 날 기미를 느낀다. 할 수 없이 반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며 쉬다가다를 반복한다. 멀리 백운대에는 정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. 새삼 청년의 말을 생각하며 겨우겨우 백운봉암문에 도착했다. 성 밖에서 사진을 찍으려 암문을 통과하는데 앞에 산악구조대 유니폼을 입은 여자 대원이 등산객에게 하산 길을 안내해주고 있는데 유니폼을 입고 마스크를 썼지만 낯 설지가 않다. 가만히 살펴보니 박은성대장이었다. 등산객과의 대화가 끝나면 인사를 하려고 근처에 서있는데 등산객의 질문이 그치지를 않는다. ‘뭔 얘기가 저렇게 많아. 물어보고 대답을 들었으면 가야지.’라고 말 많은 등산객을 속으로 핀잔하며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박은성씨가 옆으로 잠깐 시선을 돌리다가 나를 알아보았다. “저, 박홍기선생님이시죠?” 이때다 싶어 나도 말을 하였다. “네, 반가워요. 저 12성문 하는 중이에요.” “상당히 빨리 오셨네요.” “네. 시간은 괜찮은 것 같은데 용암문 지나면서 다리에 쥐가 나려고 해서 속도가 많이 느려졌어요.” 짧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같이 사진을 한 장 찍고 헤어졌다. “조심히 내려가세요.”라는 인사를 뒤로 하며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다리의 쥐도 문제지만 이때는 나의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다. 이제는 속도가 문제가 아니고 안전하게 내려가는 게 가장 중요했다. 한참을 조심조심 내려오다가 한산한 쉼터 그늘에서 체력을 보충하고 다시 출발하는데 “여기 쉼터가 있었네.”하며 남녀 한 쌍이 내 앞을 지나간다. 뒤를 따라 걷는데 들리는 얘기에 성문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. 아마도 남자가 여자를 리드하며 성문을 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12성문을 답사하는지 물어보니 그렇단다. 나도 그렇다고 하니 “그럼 같이 가시죠.” 하면서 그들이 동행을 자처한다. 나로서는 원군이 생긴 셈이었다. 나이는 사오십 대 정도로 남자는 어떤 산악모임의 베테란이고 여자는 산을 그리 많이 오르지 않은 듯 했다. 어디서 시작했는지 물어 북한산성 입구라고 답하니 자기들은 두 번으로 나누어 이번에는 보국문에서 시작했단다. 나에게 대단하시다는 칭찬을 하면서도 아마도 나의 상태를 보며 짐작이 되는 듯 한마디를 덧붙인다. “다음에는 한 번에 하지 마세요.” 나는 그들과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몸 상태가 거의 바닥이라 그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는 말을 하였다. “제가 지금 체력이 거의 떨어지고 다리에 쥐가 나려고 해서 뒤를 천천히 쫓아 갈 테니 혹시 제가 뒤처지더라도 개의치 말고 가세요.” 한참 후 가다가 멈춰서 있는 그들을 보고 나도 멈추기가 뭐해 그대로 지나쳐 내려갔다.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 대동사 진입 부를 지나쳐가는데 뒤에서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린다. “여기서 들어가야 해요.” “아, 그래요. 감사합니다. 나는 이 길은 몰라서 저 밑에서 북문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.” “그러면 30분은 더 걸릴 거예요.”하면서 앞장을 선다. ‘이게 동행의 장점이지. 큰 덕을 봤네.’ 생각하며 그들 뒤를 따른다. 다행히 그들도 속도가 빠르지 않아 내가 뒤처지더라도 그들을 놓치지는 않았다. ‘이제 거의 다 왔구나.’ 하고 생각하니 입에서 허튼소리가 절로 난다. “집에 가서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하며 퍼져야겠네.” 라고 하니 뒤에 오던 동행의 여자가 말을 한다. “막걸리 얘기 하실 줄 알았더니 맥주 얘기를 하시네요?” “맥주가 집에 있으니까요.” 라고 대답하며 가만히 생각하니 ‘새대 차이의 선입견은 어쩔 수가 없구나. 저들이 보는 우리들은 별 수 없이 막걸리 세대, 꼰대 세대네.’ 하는 생각이 든다.
그렇게 해서 북문을 거쳐 원효봉에 올랐다. 이제는 난관이 거의 없을 것이었다. 오늘 걸은 의상능선, 산성주능선, 백운대가 눈앞에 펼쳐있다. ‘지금 봐도 긴 거리고, 험준한 능선인데 저길 어떻게...’ 기념사진을 찍는 그들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. 포즈를 취하자 동행인 여성이 두 엄지손가락을 곧게 세우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. “웃으세요.” 평소 딱딱한 내 표정이 금세 환하게 바뀐다. ‘그래, 오늘은 충분히 웃고, 소리칠 자격이 있어.’ 백운대와 망경대를 포함한 북한산사령부(YouTube를 보다보면 북한산의 삼각 봉우리를 북한산사령부라 칭하는 사람들도 있음)를 뒤로 하고 두 손 활짝 벌린 사진도 찍었다. 즐거운 시간이다. 이제 4시를 조금 지났으니 해가 지려면 아직도 시간이 한참 남아있다. ‘여기서 낙조를 보면 정말 멋있겠는데’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얼마 전에 산 책이 떠오른다. 심산이라는 작가 겸 산악인이 쓴 「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」이라는 책이다.(심산은 한양대 심종성교수의 동생임) 그 책 서문에 ‘遊山如讀書(유산여독서)’라는 말의 설명이 있다. ‘산에서 노니는 것은 글 읽기와 같다.’라는 뜻이다. 讀書如遊山(독서여유산, 글 읽기란 산에서 노니는 것과 같다.)와 같이 앞뒤를 바꾼 것도, 讀書似遊山(독서사유산, 독서가 유산과 비슷하다.)라고 쓴 것도 있단다. 모두 고려 말, 조선조의 목은 이색, 신재 주세붕, 퇴계 이황 등 대학자들의 시에 나오는 글귀란다. 그러고 보니 위아래로 구비치는 능선의 생김이 어렸을 때 공부를 하며 여러 차례 어려움에 좌절하다가 이를 풀고 헤쳐 나온 여정과 닮은 것 같다. |